
송대관, 이 이름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을 떠올릴 것이다. 트로트의 전설이자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그의 별세 소식은 많은 팬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과연 그가 걸어온 길은 어땠을까? 그의 음악 세계와 함께 그를 기리며 이야기를 나눠보자.
송대관은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67년 곡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하며 가수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남진과 나훈아 같은 대스타들에 가려져 좀처럼 이름을 알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노력과 음악에 대한 사랑은 결국 그를 빛나는 스타로 성장시켰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곡은 바로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다. 이 곡은 눈부신 인기를 얻으며 송대관을 트로트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라는 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었고, 송대관은 그야말로 국민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경력은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네박자’, ‘차표 한장’ 등의 히트곡은 물론,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의 음악은 사랑받았고, 그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귀국하여 다시 무대에 서게 된다. 그때 발표한 ‘혼자랍니다’와 ‘정 때문에’는 다시 한번 그의 음악적 재능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동료 가수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던 송대관은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그가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고인의 측근에 따르면, 그가 평소에도 공연을 사랑하며 "무리하지 마시라"는 말을 들으면 "형 모르냐"고 웃으며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송대관은 언제나 무대를 사랑했던 아티스트였다.
송대관의 마지막 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치료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겼고,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팬들에게, 송대관은 영원한 국민가수로 남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쉴 테니,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자.